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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빛의 숲
민주, 인권, 평화 정신의 산실로 광주의 역사적, 정신적 중심인 구 전남도청과 그 주변에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여 민주,인권, 평화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구현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 실행을 통하여 민주, 인권, 평화의 정신을 소통과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한 아시아문화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발전소입니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의 연구, 개발 및 확산을 통하여 아시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여 아시아 동반 성장을 도모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들이 자유롭게 교류함으로써 새로운 창의적 에너지와 문화적 역량이 분출, 강화되는 계기 마련 최첨단의 복합문화시설입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대응하는 국제적 수준의 문화시설 건립을 통해 문화선진국으로서의 국가위상 정립 및 국가이미지 제고 창작, 전시, 공연 활동 등이 최첨단의 기술과 결합되어 함께 어우러지는 아시아문화를 테마로 한 복합문화시설로 기능 문화도시의 핵심기반 시설이며 전당에서 생성된 문화에너지를 광주지역뿐 아니라, 전국 및 아시아를 배경으로 세계전역으로 확산하고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물리적·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통해 문화중심도시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 역할 수행 빛의숲입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난 2005년 아시아문화전당 국제 건축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재미 건축가 우규승 씨의 빛의 숲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작품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우규승 씨의 아시아문화전당 설계안에는 빛과 숲의 개념을 전체 조성물에 도입되어, 5·18당시 시민군 본부로 사용된 전남도청 본관의 외관을 그대로 두고 주요 시설물을 지하 10개층 안에 집어넣은 지하광장 형태로 들어섰습니다.
5·18민주항쟁을 기념하며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었던 광주의 역사성을 부각하며 5·18 민주광장 및 구 전남도청, 경찰청을 중심으로 전당의 새로운 시설물을 기존 지표면보다 낮게 배치하여 역사적 건물을 기념비화 모든 부지를 시민에게 개방하여 민주주의를 경축하엿습니다.
지하를 굴착한 뒤 건물이 들어서는 지상 공원화와 지하 건물의 건축 양식이며 건물 안에서 밖의 경관을 볼 수 있으며, 천창개념을 도입, 낮에는 자연채광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불빛이 밖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열린시민 도시공원 및 소통이 원활한 마당과 같은 광장과 기존도시와 연계되어 시민공원을 조성하여 광주천, 광주공원, 무등산을 연결하는 녹지축 형성 한국 전통 마당 개념을 도시적 차원에서 재해석하여 대지 한 가운데 아시아문화광장을 중심으로 문화시설을 배치 5·18민주광장, 아시아문화광장 및 열린광장등에서는 다양한 문화활동이 벌어지는 마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역사
조선시대에 전라도에는 좌도, 우도가 있었는데 광주는 좌도에 속해 있었다. 세종 12년 읍인 노흥준이 목사 신보안을 구타하였다는 죄과로 목을 강등하여 무진군이라 개칭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문종 원년에 다시 복칭되었다가 성종 20년 광산현으로 강등되고 연산군 7년에 복구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인조 숙종대에도 이와 비슷하게 불미스러운 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복구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일제탄압기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의 새로운 지방제도에 따라 광주에 읍장을 두었는데, 그 당시의 광주는 성벽안을 성내면이라 했고 성외에 기례방, 공수방, 부동방의 3방이 있었기 때문에 1면 3방을 합병하여 광주면이라 호칭하였습니다. 1931년 4월 1일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광주읍으로 승격시켰다가 1935년에는 다시 부정을 실시 광주부로 고쳤다. 이때 행정구역은 41개 정으로 확장되었다.
대한민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자 주둔 미군에 의한 군정이 2년 11개월동안 실시되다 1947년 6월 3일부로 군정청이 폐지되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광주부는 1949년 광주시로 바뀌면서 두 차례의 행정구역 변경이 있고 나서, 1963년에는 서창, 대촌출장소가 다시 광산군에 환원되어 시 관할 구역은 좁아지고 6개 출장소와 45개 동이 되었습니다. 1966년에는 계림1구, 월산동, 효죽동의 3개동을 분동하여 48개동으로 늘렸고, 1970년 다시 산수2동, 서석2동, 학3동 등 10개동을 분동하여 모두 58개동이 되었으며 당시 광주 인구는 502천명이었습니다. 1973년 7월 1일부터 종래의 4개 출장소를 폐지하고 석곡, 지산의 2개 출장소만 존치시키는 한편 동구와 서구로 나누어 구제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1980년 4월 1일 석곡, 지산 2개 출장소를 폐지하고 북구를 신설하여 3개구로 운영하다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부산, 대구, 인천에 이어 네 번째로 직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3구 72동으로 1988년 1월 1일 법률 제3963호 공포로 송정시와 광산군 전역이 다시 광주직할시에 편입됨으로써 면적은 크게 늘어나고 4구 83동 9출장소를 관할하는 서남권 중추관리기능도시로서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1995년 3월 1일 서구에서 남구가 분구 되었고 2021년 3월말 기준 5개 자치구에 97개 행정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