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히스토리 대구는 경상도 감영 소재지로서 영남지방의 중추기능을 계속해서 수행해 오다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8도에서 23부로 개편됨에 따라 대구관찰부가 설치되었고 예하 23개 군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듬해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대구부는 대구군으로 개칭되는데, 부청 소재지로서 그 관할구역과 지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 그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이 설치되는 등 일제의 국권침탈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1910년 이사청을 폐지하면서 대구군은 다시 대구부로 바뀌게 되며, 부제는 194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07년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
부산 유래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 태종실록에 명칭이 처음 보이며,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등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부산포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1470년 성종실록에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남제가 그린 부산포 지도에는 여전히 쓰고 있습니다. 이후의 기록은 부산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는 지명이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래부지 산천조에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일렀는데 밑에 부산 개운포 양진이 있고, ..
서울 역사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때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혁거세왕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 또는 서벌, 사라, 사로라고 했고, 이후 이것이 도읍의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들은 수도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 서울은 백제 온조왕 때부터 제21대 개로왕 때까지 약 50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오늘날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이 당시의 왕성이었고, 위례성, 혹은 한성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라가 진흥왕 때에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신주를 설치하였고 선덕왕 때에는 서울 지역을 한산주로 개칭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로 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