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빛의 숲 민주, 인권, 평화 정신의 산실로 광주의 역사적, 정신적 중심인 구 전남도청과 그 주변에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여 민주,인권, 평화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구현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 실행을 통하여 민주, 인권, 평화의 정신을 소통과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한 아시아문화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발전소입니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의 연구, 개발 및 확산을 통하여 아시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여 아시아 동반 성장을 도모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들이 자유롭게 교류함으로써 새로운 창의적 에너지와 문화적 역량이 분출, 강화되는 계기 마련 최첨단의 복합문화시설입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대응하는 국제적 수준의 문화시설 건립을 통해 문화선진국으로서의 국가위상 ..
수원특례시 행사 2022. 9. 23.(금) ~ 10. 23.(일) 기간중 수원화성 화홍문에서 남수문까지 이르는 수원천 일원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가 펼쳐집니다. 정조가 꿈꾸었던 ‘개혁신도시 수원화성’을 미디어파사드 예술경관조명, 인터랙티브 아트 등의 현대 디지털기술과 빛으로 만나보세요. 제 목 : , 만천명월: 정조의 꿈, 빛이되다. 기 간 : 2022. 9. 23.(금) ~ 10. 23.(일), 31일간 장 소 : 수원화성 화홍문~남수문(수원천 일원 1.1km 구간) 주최/주관 : 수원시문화재청 / 수원문화재단 - 화홍문 : '개혁신도시 수원화성'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쇼 - 남수문 : '정조의 문 무 예 법'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쇼 - 수원천(화홍문~남수문 구간) ..
인천 탐방 광복 후 한동안 우리 나라는 나라 이름마저 각양각이하게 부를 정도로 다양한 성향의 정치세력들이 난립하여 혼란을 거듭하였습니다. 미군이 가장 일찍 진주하였다는 인천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경제를 지향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인천지역사회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습니다. 미군정 때 잠시 제물포시(1945년 10월 10일27일)로 바뀌었던 인천부도 1949년 지방 자치법에 따라 경기도 인천시로 정립되었고(1949년 8월 15일), 시의회도 구성되었으며(1952년) 시장 또한 간선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하여 일본의 잔재와 미군정의 과도기적 조치 조치들이 하나하나 청산되고 일신되어 갔고, 경제 안정과 발전을 위..
대구 히스토리 대구는 경상도 감영 소재지로서 영남지방의 중추기능을 계속해서 수행해 오다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8도에서 23부로 개편됨에 따라 대구관찰부가 설치되었고 예하 23개 군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듬해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대구부는 대구군으로 개칭되는데, 부청 소재지로서 그 관할구역과 지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 그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이 설치되는 등 일제의 국권침탈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1910년 이사청을 폐지하면서 대구군은 다시 대구부로 바뀌게 되며, 부제는 194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07년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
부산 유래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 태종실록에 명칭이 처음 보이며,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등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부산포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1470년 성종실록에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남제가 그린 부산포 지도에는 여전히 쓰고 있습니다. 이후의 기록은 부산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는 지명이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래부지 산천조에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일렀는데 밑에 부산 개운포 양진이 있고, ..
서울 역사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때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혁거세왕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 또는 서벌, 사라, 사로라고 했고, 이후 이것이 도읍의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들은 수도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 서울은 백제 온조왕 때부터 제21대 개로왕 때까지 약 50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오늘날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이 당시의 왕성이었고, 위례성, 혹은 한성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라가 진흥왕 때에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신주를 설치하였고 선덕왕 때에는 서울 지역을 한산주로 개칭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로 나누..